스압 노베이스의 결말

by ㅇㅇ posted Feb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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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 

많이 늦은 나이에 수능 한 번 더 봤다...

사실 수능을 이번에 처음 본 건 아니고,

현역 때 다들 보니까 그냥 인생에 한 번 보는 시험인데 응시나 하고 

수험표 할인 받아야겠다 해서 봤던 시험의 결과는 

국영수 7~8등급 딱 찍은 수준으로 나왔었고

고졸로 인생 1년 살다보니까 

꿈이나 명확한 목표도 없이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고졸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참 많이 실감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철이 없던 것도 맞다.

공부 말고 다른 진로나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순히 공부가 하기 싫어 학생의 본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그 선택으로 인해 받게 될 선입견과 불합리함도 감내해야하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20살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성년자 딱지를 떼고 아무런 제약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을 때는 정말 재밌었다.

알바도 해보고 술도 참 많이 마셨다.

처음에는 정말 행복했다.

사실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잘하는 게 없더라도

그들보다 조금 몸을 혹사시키면

그들보다 좀 더 좁은 집에서

먹고 싶은 것은 조금 참아가면서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고,

사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다보면 

나 하나 끼니 걱정하며 살겠느냐라는 생각이었다.

욕심이 없으니 의지도 없었다.

그냥 아침에 알바 출근해서 일하다가 저녁에 퇴근하면 동네 친구들과 술 마시기에 바빴고...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동네 친구들밖에 없던 내게서 대학생이 되는 친구들의 연락 빈도가 줄고

학기 중에는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어졌다는 것 정도?

그래도 뭐 알바하면서 만난 사람들과도 놀 수 있으니 그만이었고

정 부를 사람이 없을 땐 게임으로 시간을 떼우기도 했다...

중간에 2달 정도 알바도 안하고 조금이지만 모아놓은 돈으로 

술마시고 집에서 게임하기만 바빴던 시기도 있었다.

이 시기엔 한 달 게임 플레이 시간이 한 달 200시간이 넘어갔었으니

술 마시고 숙취에서 벗어날 쯤이면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튼 이런 한량같은 삶을 지속하며 1년이 지나갔고 (알바는 새로 구해서 하고 있었다)

21살이 됐다.

20살에 느꼈던 해방감은 구속에서 벗어날 때 일시적으로만 느낄 수 있는 느낌이란 것을

깨달았고 사회에 몸을 던지기에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질 시기이다.

스스로를 비참하게 느낄 시기라 더 와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기에 인생을 바꿔줄 여러 일들이 있었다.

첫 번째 사건은 알바하며 매니저와 트러블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일은 분명 아니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고졸 양아치소리 듣고 싸운 후에 때려쳤다.

두 번째 사건은 술취한 아빠 친구였는데

아빠가 술에 취해 모시러 가게 됐고 

아빠 친구 분 집이 우리 집을 지나서 조금 더 가면 있기에

그 분도 내가 모셔다 드리게 됐다. 

많이 취하신 아빠 먼저 집에 내려드리고 혼자

친구분을 모셔다드리는데 대뜸 내게 묻더라 

대학교는 안 다닌다고 들었다. 그럼 뭐 하고 살거냐고 묻더라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뭐라도 하면 입에 풀칠은 하고 살지 않겠냐 답하니

니 아빠는 니 먹여살린다고 고생하는데 

자식이란 놈은 이렇게 철이 없다고 욕하더라 씨발

내리면서 3만원을 거의 던지듯이 하며 양아치소리 듣고 살 거 아니면

부모님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살라더라 

매니저한테 고졸 양아치새끼 소리를 들은 직후라 그런지

솔직히 기분 개좆같았다. 아빠 친구가 아니라 그냥 아저씨였으면

한 대 쳤을 거 같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틀린말은 아니었다.

남들한테 의도적으로 피해주고 산 적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남들 눈에는 그냥 고졸 양아치였을 거다...

그때 순간 대학교를 정말 가야되나 생각도 했지만

7~8등급 노베이스 중에 노베이스가

21살이 돼서 

대학을 가고 싶다고 재수를 결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재수 생활도 쉽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재수를 결심하는 게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첫 번째 두 번째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다른 알바를 찾아 면접을 보게 됐는데

여기서 세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알바 면접을 보시는 분이 우연히 나와 이름이 같았는데

동생같아서 하는 말이라며 내게 조언을 해주셨다.

본인도 당장 알바를 뽑아야 하는 입장이고 

알바 경력도 있으며 학교도 안 다녀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나를 본인은 알바로 채용할 생각이다. 

근데 정말 다른 꿈이나 목표가 있어서 대학을 안 가는 게 아니라면

대학교 한 번 가보는 게 어떠냐고 묻는 것이었다.

원한다면 내일부터 출근해도 되는데 

본인과 이름도 같고 동생이랑 나이도 같은 내가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서

괜한 오지랖에 하는 말이라고 하셨다.

본인은 지금 자리 잡고 잘 살고 있어도 평생 대학 안 나온 게 

마음에 걸린다고 실패하더라도 한 번 정도는 도전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내일 출근하겠습니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하루종일 피씨방에서 대학교와 수능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근데 안 되겠더라 일차방정식이 뭔지도 몰랐던 내가

준비하더라도 어디 그래도 이름이나 들어본 지방대는 갈 수 있겠냐라는

생각이었다.

근데 손은 문자로 사장님께 군대 일정이 바뀌어서 출근 못할 것 같다며

죄송하다고 보내고 있었다.

솔직히 20살 처음 해방감을 느꼈을 때 이후로 

처음으로 마음이 가벼워졌었다.

못하면 어떤가? 실패해도 지금보다 못한 인생은 아닐 거다.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2주 뒤 난 다시 포기하게 된다.

처음 시작한 게 수학이었는데

인터넷을 많이 뒤져보고 노베이스 합격수기도 많이 찾아봤지만

평생 책 한 권을 제대로 풀어본 적이 없던 내가 

이 사람들의 공부량의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꼈고

그럼에도 50일의 수학부터 시작하라는 글들을 보며

풀기 시작했는데

2주 뒤에 그만뒀다.

이때는 부모님께는 말 안하고 혼자 몰래 시작했던 거였는데

2주동안 중학교 1~2학년들도 푸는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병신 20년을 안하던 짓 갑자기 한다고 역시 안 달라지는구나 생각이 들어 포기하게됐다.

인터넷을 보면 누구는 노베가 100일만에 교대를 갔다고 하고 

누구는 200일에 고려대를 갔다는데 

나는 2주동안 중학교도 벗어나질 못하는구나 하고 또 좌절했다.

아무튼 내게 크게 터치가 없으셨던 부모님이었는데

21살까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내게 

그럼 군대라도 다녀오던가 

아니면 차라리 영어회화공부라도 하라고 하셨다.

어떤 길을 가게 되더라도 영어 잘해서 손해볼 것 없다며 말이다.

군대는 너무 가기가 싫었고 영어회화를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인터넷을 뒤져보니 

20대 초반에서 유행하는 영어회화 스터디가 있더라

간단하게 설문지 형식의 레벨 테스트를 마치니 초급자반 수준이 나와

그 수준에 맞는 클래스 담당 선생으로 구성된 6인 스터디가 만들어졌다.

이게 내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꿔준 사건인데

난 당연히 초급자반이니 다들 나같은 사람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모인 날 보니 나같은 사람은 없고

죄다 명문대생이더라 

자기소개를 하는데 당연하다는 듯

본인의 학교와 전공을 말하는데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서울대 1명 고려대 2명 성대출신 직장인 1명 또 한 명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이런 이들 앞에서 나는 그냥 21살, 어디 사는 이름 홍길동 말고는 자기소개할 멘트가 없었다.

그들 눈에 낯가림하는 것으로 보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이거 말고는 그들 앞에서 뭐 하나 꺼낼 얘기가 없었다.

근데 내가 왜 충격이었냐면

어중간하던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고 까내리며 

본인들의 어중간한 열등감을 채우기 바빴는데 

누가보더라도 잘난 이들은 나를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냥 동등하게 대우해주더라

제일 비참했던 게 이거였다.

누군가의 비난도 이렇게 비참하진 않았는데

누가봐도 한심한 내가 이들에게 동등하게 대우받고 있다는 게

너무 비참했다. 

남들의 비난에는 쉽게 이빨을 드러내던 내가

진짜 잘난 사람들의 순수한 호의에는 너무나 비참함을 느꼈다.

내가 생각하던 명문대생은 평생 수동적으로 공부만 하던 공부밖에 모르던 이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실 누구보다 인생을 능동적으로 살고 있던 이들이었다.

스터디원 중 한 명은 5살짜리 어린 애가 들어도 아는 대기업에 다니던 직장인이었는데

이번에 딱 1억을 모으고 퇴사했다더라

결혼하기 전에 세계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며 말이다.

세계여행 전에 영어 회화는 좀 해야할 거 같아서

스터디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아무튼 그렇게 처음 스터디에서 어버버대다가 수업이 끝나고 

다같이 식사를 하러 가게 됐는데

가는 길에 옆에 있던 

고려대생인 여자애가 내게 조심히 물어보더라 

혹시 지금 학교 안 다니고 있는 거면 수능 준비 중인 거냐고

엄청 조심히 물어보고는 혹시나 내가 기분 나빠할까봐

다른 게 아니라 본인도 재수해서 고려대에 들어온 거라

혹시 재수 준비 중인가 하고 반가워서 물어봤다고 하더라

근데 병신같이 거기서 맞다고 해버렸다.

뭐 반가웠던 건지 이거 저거 얘기를 하더라

어떤 강사가 어떻고 학원은 어떻고 얘기를 하던데

사실 무슨 얘기인지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아는 강사라고는 50일수학 정승제, 개념나비 윤혜정밖에 모르던 시기다.

아무튼 내 입으로 재수를 얘기하게 된 첫 사건이고

이 사건으로 난 정말 진지하게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그들이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것에 만족할 게 아니라

정말 당당하게 그들과 대화하고 싶었다.

이 스터디는 딱 한 달만 했다.

내 입에서 재수 얘기를 하게 만들어준 그 친구에게는 정말로 감사한다.

18학번 고려대 재수생 여자애였는데 이름도 아직 기억난다.

근데 연락처가 없어서 수능 끝나고 제대로 고맙다는 연락도 못했다...

그날 이후 한 평생을 방황하던 내가 이제와서 수능이라니 부모님께는 죄송해서 말도 안 꺼내고 공부를 시작했다.

50일 수학과 개념나비를 꾸역꾸역 끝낼 쯤이 되니

5월이더라 

결심과는 별개로 아직 심각할 정도로 무능했다. 

의지만으로는 단기간에 성적이 오르진 않더라.

그 시점에 부모님께 이실직고 했다.

나 대학에 가고 싶다고.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더라 

바로 학원도 알아보고 하는데

서울 메이저 학원은 받아주지도 않더라 ㅋㅋ

7~8등급 당연히 안 받아주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결국 수원 쪽에 있는 재수학원에 다니게 됐다.

뭐 여기서도 받아줄 때는 원래는 안 되는 성적인데 받아주겠다 ㅇㅈㄹ하더라

막상 다녀보니 나보다 더한 새끼들도 많던데...

아무튼 반수반에 들어가게 되어 정말 열심히 했다.

솔직히 그때 공부량은 지금 내가 돌이켜 생각해봐도 믿기지 않는다.

배부르게 식사하니 졸리기에 

아침은 스누피 커피우유로 떼우고 

점심은 평소 식사량 절반

중간에 배고프면 레쓰비 한 캔 정도,

저녁은 특히 잠이 오는 시간이라 아예 식사는 안하고

초콜렛으로 떼웠다. 편의점에서 파는 엠엔엠 1200원짜리 그거 ㅇㅇ

그때 수학 수업은 애초에 따라갈 생각도 없었기에 

수학 수업시간은 그냥 자습했다. 강사들 앞에서 

쌩노베용 개념책 풀고 있었다.

내 기억엔 수학의 샘? 그랬던 거 같다.

국어는 이제 막 윤혜정 개념나비를 끝낸 수준이긴 해도

알아는 듣겠더라. 근데 어느 수준이었냐면 

독서=비문학이라는 것도 몰랐던 시절이다. ㅅㅂ 인터넷에서 비문학 책 추천해줘서

서점에서 한참을 찾았는데 알고보니 독서=비문학이더라 ㅋㅋㅋㅋㅋ

암튼 국어는 연계교재 수업만 듣고 

기출 풀어주는 수업 시간에는 걍 수학 자습함 ㅇㅇ

탐구 시간도 걍 수학 자습함 

영어 시간도 걍 수학 자습함

왜냐면 수학이 제일 문제였는데 

탐구는 금방 점수 오른다고 하기도 하고 

영어는 절평이라 3등급만 나와도 되고 단어만 외워도 3등급은 나온다고 하더라고

암튼 진짜 주구장창 수학만 했다.

책도 다른 거 안 보고 수학의 샘만 봤다.

그렇게 2회독할 쯤이 되니까 8월쯤이더라고 

이젠 수학만 할 게 아니더라 

그때 내 공부방식이 어땠냐면 

국어는 수업 시간에 풀기엔 집중력이 너무 방해돼서

안 듣는 수업들에는 무조건 수학만 풀고

자습시간에는 국어만 풀었다. 

내 기억에 이 시점에는 마더텅 검은색? 그거 국어 풀었던 거 같다 비문학 문학 화작문 이렇게 ㅇㅇ

암튼 학원에서는 미친새끼마냥 국어 수학만 풀어재끼고

학원이 11시쯤 끝났는데

끝나면 집에 가는 게 아니라 근처 스터디카페 가서 사탐 개념인강 봤다.

그러고 다음날 6시 반인가? 기상해서 학원차 타고 학원 가는 길에 

영어 단어 ㅈㄴ 외우고 학원 도착해도 수업까지 1시간 조금 안되게 남는 시간 

영단어만 존나 외웠다.

암튼 영어는 오전 수업 전까지만, 사탐은 학원 끝나면 스카에서,

국어 수학은 학원에서 미친듯이 푸니까

사람새끼가 되더라

9월 모의고사에서 33313 나옴 ㅇㅇ 

탐구는 생윤 사문이었고 

우리 학원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플래너 작성하게 하고 타이머로 공부시간 측정해서 적는 게 있었는데(수업시간은 물론 제외해야됨)

난 매주 플래너에 60시간 내외로 적어서 내고

그 플래너를 바탕으로 일주일에 한 번 담임이랑 상담하는데

맨날 잔소리를 하시더라고

학원 수업 제외하고 일주일 60시간이면 아무리 주말에는 수업이 없다고 하더라도

뻥튀기해서 적었거나 몸에 이상 올 정도로 혹사하는 거라고

근데 뭐 뻥튀기도 아니고 혹사는 맞는데 당시엔 자기혐오가 극에 달하던 시절이라

이번에도 포기하고 도망치거나 합리화하면서 지금 자리에 만족하면서 나태해질 거면

차라리 펜 잡고 공부하다가 죽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혹사고 뭐고 신경 안 썼음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말도 안 되긴 해

근데 쌩노베로 시작해서

어느정도 베이스가 생기기 시작하고 기출 위주로 

공부하기 시작하니까

실력 상승이 하루가 다르게 늘더라고 

진짜 미친놈처럼 공부했었다. 

아침에 학원에 착석하면 점심 전까지는 진짜 급한 화장실 말고는 

쉬는시간에도 한 번을 안 일어나고 공부만 했다.

점심도 대충 빨리 먹고 다시 앉아서 공부

점수가 오르는 게 눈에 보이니까 성취감이랑 재미도 있더라.

10월 정도에 피크를 찍게 됐는데 

이때 10모 물론 평가원 모의고사도 아니고 크게 의미는 없는 거 아는데

국어 2문제 틀리고 사탐 만점, 수학도 2등급 언저리였나 그렇게 나왔다.

진짜 할 수 있는 게 눈에 보이니까 수능 전날까지도 미친듯이 달렸는데

수능을 한 달 앞둔 시점에는 수학 평가원 기출들 문제 유형 풀이과정을 다 외웠다.

수능을 앞두고는 수학은 평가원 5개년 모의고사는 풀면 96~100 점이 나오고

국어도 기출 모의고사는 고정 1

영어는 2~3 

탐구는 거의 1등급이었는데 조금만 삐끗해도 2~3등급으로 나가리되더라

그렇게 자신이 붙은 실력으로

수능 시험을 보게 됐는데 부모님은 9모 성적만 알고계시니 3등급대로 알고 계셨다.

뭐 이후에 1등급대 성적들은 정식 모의고사도 아니었고

모의고사라고 해도 수능이 아닌 이상 굳이 떠벌리진 않았다.

3등급대만 해도 부모님은 그렇게 좋아하시더라 

암튼 시험을 보는데

다들 알 거다. 19년도 악명 높은 국어시험

씨발 진짜 너무 좆같더라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너희들은 5개년 모의고사 기출 이런 거에서나 보고 있으니 풀만한데? 할 수도 있는데

시험장에서 보면 진짜 사람 미친다.

결국 시간 문제로 뉴턴지문은 다 찍고 

수학시간이 됐다. 뭐 나름 멘탈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기에

국어에서 찍은 뉴턴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수학 열심히 풀었다.

21, 29, 30번 3문제 빼고 나머지 먼저 풀었는데 

딱 45분 걸렸다 마킹까지 ㅇㅇ 킬러가 아닌 이상

거의 정형화된 문제들이었고 이미 5개년 기출 모의고사 풀이과정은 거의 체화했던 터라 

쉽게 풀리더라 

근데 21번을 풀기 시작하는데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분명 풀어봤던 문제 유형이었던 거 같은데 

풀이방법을 한 번 잘못 잡으니까 답이 계속 안 나오더라

차라리 주관식이면 틀린 상태로 맞겠지 하고 답을 썼을 텐데

21번 객관식이니 1번부터 5번까지 안에 내가 도출해낸 답이 있어야 했다...

근데 없더라...

여기서 2차로 멘탈이 털리고

남은시간 20분 29번에 할애했지만 이것마저 틀리고 

30번은 손도 못 댔다...

그렇게 멘탈 개박살난채로 

점심시간에 밥도 안 먹었다.

다 망했다는 생각에 나간 멘탈로 영어시간

어차피 영어는 2등급 나오면 좋고 3등급이면 어쩔 수 없지 전략으로 공부한 과목이라

뭐 털릴 멘탈도 없었고 마무리됐다.

이후 사탐시간에는 

생윤시간에 5분 가량 밖에서 어떤 미친새끼가 

클락션을 울려재끼더라 

시발 여기서 멘탈 바사삭되고

제2외국어 신청했었는데 

제2외국어는 시발 뭐 서울대는 어림도 없을텐데 하며

다 체념한채로 

집에 버스 타고 갔다.

어차피 부모님은 제2외국어 끝나는 시간으로 알고 계셨기에 

일찍 나온 내가 전화하는 게 아니라면 아직 학교 근처에 계실 리가 없었다.

부모님께 너무 죄송해서 데리러 오라고도 못했다.

집에 가서 

왜 벌써 왔냐는 부모님께 그냥 제2외국어 응시 안해서 그렇다 어차피

이건 대학 갈 때 불이익 하나도 없는 거다 말했다.

뭐 서울대 아니면 말이다. 물론 난 10월까지 가능성을 봤었지만

부모님은 당연히 3등급대로 알고 계시니 서울대는 애초에 고려도 안하신듯

아 그러냐 미리 말하면 일찍 가서 기다렸을텐데 하시더라...

암튼 저녁 식사를 하러 가게 됐고

밥을 먹으며 가채점을 했다....

국어 89점 

수학 88점

영어 3등급

생윤 48점

사문 45점

 나오더라

부모님은 정말 잘 봤다고 좋아하시는데

난 좋아할 수 없었다.

애초에 기대치가 3등급이던 부모님과 달리

난 서울대까지 가능성을 봤던 시기였다..,.

총 공부량으로 봤을 때 나보다 많이 공부한 사람들 분명 많을 것이다.

근데 이것만큼은 자신할 수 있었다.

내가 미친듯이 공부했던 그 반년동안만 봤을 때

나보다 열심히 한 새끼가 있을리가 없다

나보다 열심히 했으면 지금 살아있을리가 없다

이미 과로사로 죽었을 거다 

이것만큼은 자신할 수 있다.

19 악명높은 국어 덕에 89점이라는 점수로도 백분위 98 1등급이 나오더라

수학은 딱 1컷에 맞고 

암튼 그렇게 중경외시 상경계열에 진학했다.

혹여나 아쉬운 티조차 낼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죽어라 열심히 한 내게 아쉬운 티를 내기 미안했다.

혹시 다시 한 번 도전하면 정말 서울대를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좆같은 생각이 들까봐 

평소보다 잘 봐서 이 성적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국어는 찍었던 뉴턴 지문에서 3문제나 맞아서 겨우 1등급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사실 찍었던 뉴턴지문은 다 틀렸었다. 거기서 정말 3문제라도 찍어서 맞췄었더라면

아쉽지도 않았을 거다...

씨발 진짜 죽어라 열심히 했고

처음 시작할 때 목표보다 정말 잘 봤는데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은 조금 남더라

어쩌겠냐 그래도 받아들였다. 처음 목표보다 분명 잘했으니까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며

찍어서 3문제 맞췄다고 생각하고 살기로 했다....

근데 이번에 입대한김에 

다시 수능 공부했다.

이 아쉬움이 평생 남을 거 같아서 한 번만 더 보기로 했다.

결국 19수능보다 처참한 성적표가 남긴 했지만

이젠 아쉬움도 남기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고졸 양아치 소리들으면서도 반박 못하던

그 시절에 비하면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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